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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위해 돈 법니다./여행의 온도

나의 사랑, 나만의 도쿄.

도쿄만 6번째 방문을 했다. 도쿄는 내가 거쳐간 수많은 도시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다. 이 시국과 코로나 여파로 잠시 보류는 하고 있지만, 언제 다시 방문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sky scanner를 꾸준히 돌려보는 것 보면. 10만 원의 사상 초유의 가격을 보고 결제 직전까지 갔지만, 그래도 잠시 참기로 했다.

 

도쿄는 특별한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 비해 엄청나게 특출 난 맛집과 쇼핑 거리가 있는 건 사실 아니다. 그래서 "왜 또 도쿄를 가?", "도쿄 가면 도대체 뭐해?", "도쿄에 여자 친구 숨겨 놓은 거 아니야?"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듣는다.

정작 도쿄의 유명 관광지라 할 수 있는 도쿄타워는 가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나는 도쿄에 와 낯선 이방인이 되어 자유롭게 다니는 그 기분이 좋다. 서울이랑 비슷하게 모든지 편하게 할 수 있으면서도 무언가 조금 다른, 섬세하고 감성적인 부분에 끌리는 듯하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독특하지만 친근한 그런 도시.

 

 

 

'도쿄의 디테일'이라는 책이 출판되었을 정도로, 도쿄는 구석구석 디테일이 살아있다. 최근 유행하는 브랜드를 보면, '확실한 컨셉'을 갖고, 그 콘셉트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디테일'들을 통해 브랜드를 완성하는 경향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인양품'이며, 무인양품의 모든 상품에는 미니멀리즘과 일본 특유의 simple함이 담겨 있다. 심지어 직원들의 말투, 복장, 무지 패스 앱, 그리고 오프라인 매장의 동선 배치도 다른 가게들과 사뭇 다르다. 이케아가 북유럽의 모던하고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미니멀라이즘을 그대로 담아 브랜드화하였다면, 무인양품은 절제되고 심플한 일본 특유의 문화를 그대로 담아냈다. 무인양품은 말 그대로 일본 그 자체이다.

 

아무리 붐비고, 아무리 장사가 잘되도, 잘 정돈된 특유의 절제미가 살아있는 가게들. 사람이 많아도 번잡하지 않다.

 

블루보틀은 또 어떤가. 블루보틀은 명백히 미국에서 시작한 미국 브랜드이지만, 미국 서부의 블루보틀, 미국 동부의 블루보틀, 그리고 일본의 블루보틀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미서부의 블루보틀은 여유롭고 칠 하지만, 특유의 유쾌함이 살아있고, 미 동부(정확히는 뉴욕)의 블루보틀은 다소 바쁜 시티라이프 속에서도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하지만 블루보틀만의 차분한 모드는 찾기 어렵다. 그래도 메트로폴리탄 시티 치고는 특유의 한적함이 있다. 

 

롯폰기, 일본의 메인 도심이지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갑자기 등장하는 블루보틀 롯폰기점.

 

뉴욕의 블루보틀은, 도쿄라는 대도시에도 블루보틀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도쿄의 지점과는 사뭇 다르다.

 

 

그중 일본의 블루보틀은, 정말 다른 브랜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느낌이 다르다. 교토의 블루보틀은 교토의 전통 가옥을 현대화한듯한 인테리어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커피를 주문한 지 20분이 되어가지만 아무도 보채지 않는다. 도쿄의 블루보틀은 대체로 사람이 붐빔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심플하고, 정돈되어 있다. 블루보틀 도쿄 1호점인 키요미스점을 간다면, 더욱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로 공간을 즐길 수 있다. 5초 만에 나오는 Espresso가 아닌 Drip Coffee를 제공하는 블루보틀의 철학과, 이 느긋하고 차분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매장은 브랜드의 철학을 A to Z까지 보여주는 듯하다.

 

블루보틀 도쿄 1호점, 여유로운 동네 분위기와, 더 여유로운 블루보틀의 분위기.

 

 

도쿄의 거리거리 역시도, 매우 심플하고 여유롭다. 특히 옆에 하천이 흐르는 나카메구로 지역은 고급스러우면서도 특유의 심플함이 느껴지는 지역이다. 이 골목을 구석구석 걷다 보면 다양한 생각에 잠기곤 한다. 물집이 잡힐 정도로 걸어도 좀 더 걷고 싶은 곳, 배가 터질 듯이 불러도 편의점에서 군것질 하나는 더 해야 직성이 풀리는 곳. 나는 그런 특별한 듯 특별하지 않은 도쿄가 너무 좋다.

 

버스를 타지 않고, 괜히 골목골목 걷게 되는 나카메구로 강변.

 

구역별로 분위기도 참 달라지는 부분도 좋고. 몇 대해 이어진 가게들도, 핫해진 골목들도 우리나라처럼 갑자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나진 않는 부분도 좋다. 내년에 와도 또 있을 거라는 기대감. 55만 원짜리 영감님이 몇십 년째 운영하시는 초밥집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데... 이건 슬슬 먹으러 가봐야 할 텐데 사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행기에는 쓰지 않았지만, 현대미술 역시 도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MORI Museum.

 

 

물론 제3자의 입장에서, 여행자의 입장에서 좋은 면만 편식해서 보는 거겠지만. 내가 모르는 부분이 더 많겠지만. 아무렴 어때. 나는 여행 자니까. 내가 행복하고 즐거우면 그걸로 됐다. 이번 여행도 좋은 면만 편식하며 잘 힐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