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 반하다.
처음 말레이시아로 여행 간다고 회사 동료에게 말했을 때, 다들 반응이 "거기 뭐 없지 않아?"였다. 사실 내가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이유도 동남아를 가고 싶은데, 태국은 최근에 너무 많이 갔고, 싱가포르는 무언가 심심할 것 같고, '흠... 어디 새로운 딴 곳은 없을까?' 하다 찾은 곳이다. (이 말이 무색하게 사실 올해 9월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끊었다.) 우려와는 다르게 5일 꽉 채운 여정 동안 매일 다른 새로움과 재미를 느끼며 여행을 즐겼다.
말레이시아는 여행하기에 정말 매력적인 국가다. 앙코르와트 같은 임팩트 있는 관광지나 태국의 흥의 끝판왕 같은 나이트라이프는 없지만, 여유롭게 이 나라 현지 문화와 중국, 인도, 그 외의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기 좋았다. 섬 전체가 면세지역이라 값싼 술을 원 없이 즐기며 투명하고 맑은 바다와 우거진 숲에 빠지는 랑카위에서의 휴양도 단연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이 나라는 사회시간에 글로만 배웠던 “salad bowl” 그 자체였다. 말레이시아의 국교는 공식적으로 이슬람이지만, 다른 종교와 수많은 인종을 존중한다. 다른 이슬람 국가를 몇 국가 방문하였는데, 이렇게 말레이시아처럼 다른 종교/문화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힌두교의 성지 중 하나인 바투 동굴도 이 곳에 있고,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예수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도 우리나라처럼 즐기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도로 한 블록을 건널 때마다 다른 국가를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슬람 유적을 여행하다, 힌두교의 문화가 보이고, 그러다 어느새 보통의 동남아 분위기가 나타나다가, 어마어마한 규모의 차이나 타운에 도착하기도 한다.
음식도 트레디셔널 로컬 요리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이웃 국가들의 수많은 장점들과 레시피를 폭풍 흡수한듯하다. 기본적으로 로컬 식당의 푸드 퀄리티는 태국보다 훌륭했다. 정말 훌륭한 맛 집들은 태국에 더 많았던 것 같지만, 실패할 확률은 말레이시아가 현저히 적었다.
더욱이, 내가 만난 현지인들은 가식 없는 친절과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내가 돈을 내서 느끼게 하는 친절을 넘어 내 입장을 생각해야만 해줄 수 있는 배려를 보여주었다. 태국의 친절함은 약간 관광객을 위한 과잉 친절에 가끔 부담스러움을 느끼지만, 말레이시아의 친절함은 적당히 자연스러운, 진심에서 나온듯한 친절함이었다.
길에서 조금만 어리바리하게 있으면 먼저 다가와 도와주는 현지인들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현지인들이 다가왔을 때, 괜히 경계하고 까칠하게 굴었었다. 같은 해 여름에 방문한 모로코에서는 관광객을 돈으로 보아 묻지도 않은 길을 알려주며 돈을 달라고 하고, 사진 찍어 주겠다며 핸드폰을 가져간 후 돈을 달라는 등의 삐끼만 가득했던 기억이 남아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무례하게 거절했던 것 같아 괜히 미안하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감사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즐기고 행복하고 재밌게 여행하고 돌아간다! 그래 바로 이 맛에 여행하지! 통장이 텅~ 비어도, 새로운 문화와 잊지 못할, 아니 나중에는 희미해지겠지만, 당장 너무 행복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다면 충분히 보람찬 여행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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